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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척아는척TV] 술 잔이 다 다른 이유?왜 술잔이 다 다를까요...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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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척아는척TV] 철로폭이 각 나라마다 다 다르다고??통일프로젝트 1탄 ! 전세계 철로폭이 다르답니다. 그 이유를 알면 정말 상식이 뿜뿜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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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척아는척TV] 왜 나라마다 콘센트 모양이 다른걸까요?돼지코, 삼지창 각 나라마다 다른 콘센트 그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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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박사의 표준살롱] 국보와 보물의 차이?얼마 전 필자는 한양도성길 트레킹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성곽의 높이는 평균 5~8미터, 전체 길이는 약 18.6km이다. 한양도성길의 주요 문루를 보면 4대문 4소문으로 되어있다. 4대문은 동서남북으로 숭례문(남대문, 국보 제1호), 흥인지문(동대문, 보물 제1호), 돈의문(서대문), 숙정문(북대문, 이후 홍지문이 대신함), 4소문은 혜화문, 광화문, 소의문, 창의문으로 모두 사적 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날부터 주변사람들 중에 품행과 인품이 갖추어지지 못한 이들을 "사가지(싹수) 없는"사람이라 하는데 이는 유교의 "인, 의, 예, 지"를 바탕으로 판단한 것으로 한양도성의 4대 문의 이름에 투영되어 있다. 흥인지문에는 "인", 돈의문은 "의", 숭례문은 "예", 홍지문은 "지"라는 글씨가 들어있다. 이렇듯 선조의 지혜의 담겨 있는 한양도성의 문루를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는 서대문이라 불리는 돈의문은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는 아픔이 있었으나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건재하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일제강점기에 보물 제1호, 제2호로 각각 지정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숭례문은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는데 역사적 가치가 비슷한 흥인지문을 보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보호법 제23조(보물 및 국보의 지정)에 의하면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라고 하고 동법 시행령 [별표 1의 2]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에서 '국보'는 1.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특히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큰 것 2.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제작연대가 오래되었으며 그 시대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특히 보존가치가 큰 것 3.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조형미나 제작기술이 특히 우수하여 그 유례가 적은 것 4.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형태, 물질, 제재, 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것 5.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특히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 으로 명시하고 있다. 위와 같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의 국보 지정기준으로 볼 때 한양도성의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무슨 기준으로 국보와 보물로 구분하여 지정했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물론 문화재심의위원회를 통해서 지정되었다고 하지만 쉽게 와닿지 않는다. 최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지정번호 개선을 통해 "새겨야 할 것은 번호가 아닌 문화재의 가치"라고 하며 문화재 지정번호가 문화재 가치를 서열화하는 사회적 인식을 해소하고 문화재의 보호가치를 확대한다고 지정번호를 폐지하였다. 따라서 국보 제1호 숭례문은 국보 숭례문으로, 보물 제1호 흥인지문은 보물 흥인지문으로 "개선"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흥인지문을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숭례문이 국보제1호로 지정됨으로써 "국보"의 권위와 제1호라는 가치를 더욱 드높이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제 와서 문화재의 서열화를 해소하는 것은 '자가당착'적인 조치라고 본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국보와 보물의 지정번호 폐지보다는 오히려 국보와 보물이 구분하는 지정기준이 보다 명확했으면 좋겠고 지금이라도 과거의 지정된 것을 다시 한번 재검토하여 잘못된 문화재 지정은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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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박사의 표준살롱] 재활용되지 못하는 커다란 와인병들...어쩌지?오늘 저녁 집에서 모처럼 혼술을 하고 싶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일전에 먹다만 와인 1병이 보였다. 아내는 바로 옆에서 "먹을 수 없어요! 오래돼서... 요리할 때나 써야지"하고 말한다. 순간 손에 쥔 와인병을 냉장고에 넣는데 "왜 이렇게 병이 무겁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K대학교 문화예술최고위과정에 다닐 때 꼭 학교측에서 강의중간 쉬는 시간에 항상 와인파티를 열어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와인을 단순히 선호하는 수준인데 비하여 일부 학생들은 와인 전문가 과정 수료를 자랑할 정도로 와인에 대하여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와인에 대하여 아는 바 없어서 전문가 수준의 수준의 학생에게 "와인병은 왜 이렇게 크죠?" 하는 질문을 던지니 "와인병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라고 한다. 와인전문가라고 자평하는 사람들도 와인의 맛에 관심이 있지 와인병의 무게나 용량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대략적으로 와인병의 용량은 '750ml'라고 한다. 와인병이 이런 규격으로 시판되는 것은 고대 로마인들 하루치 와인과 물의 총량설, 와인병을 만드는 유리장인이 한 번에 입으로 불어내는 평균 폐활량 설 등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1975년 유럽연합(EU)이 포장과 관련한 법령을 제정하여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의 편의를 위해 750ml로 정해진 용기에 담아 판매하기로 했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고 한다. 와인병이 무겁고 커다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와인을 다 먹고 버려지는 750ml용량의 커다란 와인병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와인병은 수입제품이라 병유리 성분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재활용으로 분리수거가 되지 못하고 땅에 매립하여야 한다고 한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어떤 입주민이 와인병이 재활용될 줄 알고 병 겉면의 종이 상표도 깨끗이 떼어내고 물에 헹구어 재활용 수거제품에 내놓았다가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필자도 대학교 인근 와인술집 담장을 와인병으로 쌓아서 만든 것을 유심히 보면서 "참 아이디어 좋다"라고 했는데 다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병의 1/2크기의 소주병 경우에는 2003년부터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가 도입되어 소주업체 상호간 공병을 재활용하였고 2010년부터 10개 주요 소주업체가 표준 용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도 코로나19 사태로 가끔 집에서 혼술하고 남겨진 공병을 인근 슈퍼마켓에 가서 팔기도 하고 분리수거제품으로 내놓기도 한다. 이는 다시 재활용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와인 수입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량과 수입액 모두 역대 가장 많은 것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집에서 혼술, 홈술 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더욱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더욱 증가가 예상될 것 같은 와인의 소비량은 할 수 없더라도 당장 버려지는 와인병 처리가 큰 문제일 것이다. 현재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도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는 회수된 와인병들을 도로, 건축 건설 자재로 사용했다는 점을 착안하여 우리나라도 와인병을 무작정 땅에 매립할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슬기로운 방안을 강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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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박사의 표준살롱] 우리나라 최초의 KS, 백열전구에 만나보니...신정동 판자촌(당시 하꼬방집)에 어느 날 백열전구등이 들어왔다. 집집마다 방안의 백열전구의 밝은 빛을 보기보다는 모두들 집밖으로 나와 서로 남의 집에서 뿜어 나오는 선명한 빛을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기뻐했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날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하나의 축제였다. 당시 만 6세였던 필자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했던 것은 꼭 백열전구를 만난 신기했던 기억도 있지만 이전에 겪은 트라우마처럼 내 머릿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이유이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당산동 은행나무 밑에서 살던 우리 집은 할아버지, 큰아버지 식구들과 문간방에 살던 다른 가족들을 포함해서 인근 여러 집을 포함하면 약 200여명이 거주했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건너편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변에 새로운 도로(지금의 올림픽도로)를 만들기 위해 강제 철거를 당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참혹한 철거를 당했는데 제대로 된 세간 살림도 건지지 못하고 급박하게 쫓겨난 것이다. 정말 평지도 아닌 야산에 굴을 파고 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널빤지 같은 판자 쪼가리 하나 둘 씩 구해서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참으로 구차했던 시절이고 아픔이었다. 밤이면 전기도 없이 칠흑같이 어두움에 또 한 번 몸서리쳐야 했다. 집을 짓기 시작해서 땅을 조금이라도 파면 누구인지도 모르는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래도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자기들도 쉽게 먹지 못하는 비싼 막걸리 한 사발과 과일을 올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보내주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늘상 촛불로 밤을 지새우다가 어느 날 부터는 석유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통형의 유리 안에는 석유위에 하얀 심지가 있는데 하릴없이 석유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춥고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듯이 석유등의 끄름이 내 코옆에 묻기도 하고 석유등의 원통형 유리도 스스로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석유냄새에 정신이 휘청하기도 했지만 어떤 어두움보다는 좋았다. 이제 제법 가가호호 집들이 마을단위로 자리를 잡히면서 전기도 들어오고 그토록 고대했던 백열전구를 밝히는 날이 온 것이다. 온 세상이 밝아지고 새로운 세상이 다가온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KS제품이 백열전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도 다가오지 않았던 KS제품으로 대도시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필자도 세월이 흘러서 백열전구가 밝히는 따뜻한 방에서 공부도 하고 옆집에서 들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잠을 애써 청했던 아늑한 기억이 있다. 어느 날에는 동네 전파사에 가서 30촉, 60촉 전구를 사러가면서 왜 자주 전구가 꺼지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전파사 주인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필라멘트가 끊어졌네!”하는 답변을 들었다. 필라멘트는 전구에서 빛을 내는 요소의 하나로서 과거에는 탄소로 만든 얇은 줄이나 대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텅스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끊어지면 빛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구를 흔들면 필라멘트가 끊어진 작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바로 교체했던 옛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서 요즘은 형광등, LED 등과 같은 다른 대체재에 밀려서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공공부문의 백열전구를 모두 퇴출시킬 모양이다. 또한 2014년 1월부터 대한민국 내의 150W 이하의 전구 생산 및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 국내 수목원이나 여행지에 가면 숲속에서 알알이 열을 지어 걸어놓은 노란 오렌지 빛 백열전구를 보게되면 또 다른 레트로 감성이 올라와 남들보다도 더욱 여행의 기분이 묘해진다. 나의 어린 시절에 친절하고 다정하게 밝혀주었던 백열전구의 매력에 빠져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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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박사의 표준살롱] 알람브라궁전의 아름다운 야경과 LED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세계 방방곡곡 수많은 나라들을 찾아다니지만 가장 가고 싶은 나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스페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스페인 여행지 중에서도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이 아닐 까 한다. 아랍어로 붉은 궁전이라고 번역되는 알람브라궁전은 1238년부터 1358년 사이 이슬람세력인 무어족인 나스르왕조가 축성한 궁전인데 여름별장인 헤네랄리페 정원과 함께 하나의 완성미 있는 성채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알람브라궁전을 낮에 다녀온 후 인터넷으로 어렵게 구입한 야간 입장권을 가지고 당일 재차 방문한 적이 있다. 저녁 8시가 되자마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광장에 운집하여 알람브라궁전의 야간입장을 서두르고 있었다. 한낮에 그렇게 멋진 모습을 뽐냈던 궁전은 한밤중이 되서야 비로소 수줍게 입장을 허락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수줍은 모습은 보인 이유는 바로 현대 문명의 하나인 LED조명에 의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민낯을 애써 보여주고 있지 아닌가 하는 다소 불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알람브라궁전의 야경은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도 엄숙했다. 깊은 밤에 어둠속으로 숨었던 성채는 잔잔한 조명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필자는 잠시나마 궁전을 처음 만든 왕들도 이처럼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을 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횃불이 유일한 조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필자도 어릴 때부터 심지에 불을 붙여 쓰는 석유등에서 시작해서 필라멘트가 자주 끊기는 백열등, 오래 쓰면 깜박거리는 형광등에서 현재는 LED(light-emitting diode)라고도 전등을 쓰는데 수명과 전기 효율이 백열등보다 몇 배 이상 높으며 형광등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이처럼 LED 장점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우리는 그 멋진 알람브라 궁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LED는 초기에 설치비가 많은 드는 단점이외에 저탄소 배출의 친환경 조명으로 소나무 약 8,600그루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디지털시대의 맞는 통신시설 등에 적용 등 IT 첨단기술구현도 가능하다고 하니 LED가 주는 선한 영향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정부도 공공기관 에너지이용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에 의거 정부가 공공기관 내 조명을 모두 LED조명으로 교체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고 현재는 많은 가정에서도 형광등에서 LED등으로 교체가 활발하다고 한다. LED조명에 의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알람브라궁전! 전기가 없던 시절에 횃불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당시의 왕이나 건축가들의 시샘을 뒤로하고 LED조명을 통해서 보여준 아름다운 알라브라궁전의 야경은 앞으로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